폴란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첫 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찾아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여행을 즐기지 않더라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관해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학창 시절 한국사를 배우던 중 선생님께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불국사와 종묘 등을 설명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조금 더 많이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다. 거리의 포석 하나까지 세월이 묻어나던 아름다운 골목은 도시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고, 신앙과 예술로 빚어낸 위대한 건축물에도,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장엄한 자연 풍경에도 그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런 경험이 거듭되면서 자연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라면 분명 의미와 가치를 가진 곳일 것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생겼다. ‘믿고 가는’ 곳이랄까. 그러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면, 이 수많은 세계유산 중 첫 번째는 어디일까?  

 

 그 의문은 여행지에서 스치는 수많은 상념이 그렇듯 이내 잊어버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그 대답을 듣게 되었다.


 어느 봄, 가족여행을 위해 폴란드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우리 셋은 폴란드에서 가고 싶은 장소를 하나씩 정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는 ‘고 제터스’라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폴란드 편을 찾아보았다. ‘고 제터스’는 세계 명소를 찾아다니는 히어로들의 모험 이야기인데, 폴란드 편의 배경은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었다. 처음 듣는 곳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아이는 그곳에 가장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소금광산을 일정에 포함시켰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바르샤바에서 기차를 타고 크라쿠프로 가서 렌터카를 이용했다. 크라쿠프 시내에서는 차로 3-40분 정도면 도착한다. 밖에서 봤을 때는 아담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그 건물을 통해 수백 미터 땅속으로 내려가면 진짜 소금광산을 만나게 된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시간대별로 한정된 인원이 입장하며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둘러볼 수 있다. 실제 광부 체험을 하는 코스도 있다. 우리는 영어로 진행되는 일반 투어를 선택했다. 우리가 입장한 시간대에는 수년째 근무해왔다는 노련한 가이드의 인솔로 전 세계에서 온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 투어는 까마득해 끝이 보이지 않는 300여 개의 어둑한 나무 계단을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재는 130m 깊이에서 관람객 투어가 이루어지는데, 광산은 총 327m의 깊이에 2000개가 넘는 방이 있고 갱도 길이만 총 300km에 이른다. 소금은 700년 동안 폴란드 왕국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초기에는 밧줄로 오르내리며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소금 채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단단한 통로와 바닥까지 모두 소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부는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빛이 귀했다. 우리는 어둠을 더듬으며 시간을 거슬러 걸었다. 땅 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은 어딘가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에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인간의 수고가 깎아낸 세월을 보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때 가이드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곳은 1978년 유네스코에 처음으로 등재된 세계유산이라고. 오래전 스쳐 지나갔던 의문의 답이었다. 사람이 오래 머무는 곳에는 기술과 예술이 꽃을 피운다. 우리는 하얗게 소금꽃이 핀 도르래와 소금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았다.
한참을 걸은 끝에 닿은 곳은 예배당이었다. 믿기지 않는 규모의 지하 성당이 그 안에 있었다. 제단과 성상, 벽면의 섬세한 조각들이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광산에서 일하는 것은 위험이 따랐고, 노동자들은 신앙으로 그것을 이겨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들은 예배당의 ‘모든’ 것을 소금으로 직접 만들었다. 썩지 않고, 짠맛이 나는 샹들리에가 우리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이어진 투어는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했지만,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간간히 웃음과 체험이 곁들여졌다. 아이는 소금 결정을 관찰하고, 암염을 맛보고, 광산에 얽힌 전설에 흥미를 보였다. 소금광산을 신비로워했다. 마지막으로 레스토랑과 소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를 통과하자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눅진한 공기와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는 순식간에 바깥세상으로 되돌려졌다.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중세시대에 소금은 금에 비견될 정도로 값비싼 것이었다. 그 시대에 소금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했으리라.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소금광산은 우리를 불러 모은다. 더 멀리 더 많은 곳에서부터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간다. 이제는 거기에 영원히 남겨진 유산을 보기 위해서. 짠맛이 나고 썩지 않는, 유산을 찾아서.




TRAVEL INFORMATION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S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나누어진다. 유네스코는 1978년 폴란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을 시작으로 12곳을 지정하고, 현재까지 세계유산을 심사하여 선정하고 있다. 신전을 형상화한 유네스코 로고 때문인지 1호 세계유산으로 많이 오해하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인근의 다른 유적과 함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로 1987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